12/18/2011

최수앙


최수앙은 인체를 주제로 작업한다. 놀랍도록 사실적인 형상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이는 모방의 주체가 되는 원본을 가정한 재현 개념으로서의 극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서 선택된 사실주의라 할 수 있다. 즉 최수앙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딱히 누구라 꼬집기는 어렵지만 현실세계에서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은 실체를 부여받은 인물들이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 딱히 유명하지 않거나 주목 대상에서 벗어난 범인(凡人)들을 작업의 주소재로 삼는다. 더 자세히 말하면 ‘현대인에게 정신병이란 누구나 하나씩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최수앙의 인물들은 평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 결여되거나 혹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없는 상태로 놓여진다.



병리학적 징후를 가진 소통불가의 사람들















[Vegetative State], 2007년
136cmx49cmx18cm, Oil on Resin


 작가는 그 동안 몇 회의 개인전을 통해 병리학적 주제와 관련된 용어들을 타이틀로 사용해왔다. 이를테면 ‘가려움증(Pruritus)’, ‘식물인간(Vegetative State)’, ‘아스퍼거의 섬(Islets of Aspergers)’ 등이 그것이다. 외양의 묘사 보다는 외형을 통해 자연스레 포착가능한 인물의 내면, 즉 심리적인 상태에 큰 관심을 보이는 작가에게 이러한 병리학적 주제는 곧 작가자신 혹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소통의 부재와 연결된다. ‘병리(病理, pathology)’라는 말은 질병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징후를 통해 병의 원인 혹은 발생경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른바 정상의 상태라 할 수 있는 건강한 생체구조인 ‘생리(生理, physiology)’가 아니라 무언가 문제적 상황을 단초로 하여 거꾸로 질병의 본질을 추적해내는 이 일련의 과정은 최수앙의 작품들에서도 여실히 보여진다. 관객들은 놀라우리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인물들이 암시하는 몇몇의 징후를 통해 그 인물이 처한 상황 혹은 문제점들을 역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가 ‘식물적 상태’라고 명명한 일련의 작업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수동적인 상태를, ‘가려움증’ 작업을 통해서는 수동적인 상황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불가피하게 자신이 능동적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가하게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그리고 ‘아스퍼거의 섬' 작업에서는 자폐증의 일환으로 일반적인 대인관계나 사회적인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의 특징을 실감나게 제시한다. 이러한 병리학적 징후들에서 진단 가능하듯 그의 작품을 대할 때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불편함은 내면에 잠재해있는 심리적인 답답함, 혼란스러움 혹은 부조리함에서 기인한다.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 즉 과잉·결핍·갈등의 세 가지 감정은 그의 작품을 읽어내는데 있어 중요한 접점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잉 혹은 결핍된 요소를 갖고 있는데, 이를 겉으로 드러내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감추어야 할 어떤 것, 즉 터부시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서로간의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통제된 사회 속의 무기력한 인간의 초상

이번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기념전’은 이전 전시들과 달리 별다른 제목 없이 ‘최·수·앙’이라는 작가의 이름 자체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동안 선보였던 작가의 작업 세계를 압축해서 제시하는 이번 전시는 특히 그의 근작들 다수와 대표작 중 일부가 선보이며, 편의상 3개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 구성되는데 각각의 공간들은 1층 전시실 ‘Vegetative State’, 2층 전시실 ‘The Blind for The Blind’, 3층 전시실 ‘Ordinary Laboratory’라는 소주제로 구분되어 소개된다. 1층 전시실 ‘Vegetative State’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라는 거대한 체제 안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인간들의 처지를 가시화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때로는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규격화, 체계화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식물적 상태, 즉 Vegetative State’라 명명한다.






















[The Hero] 2009년
34cmx45cmx110cm, Oil on Resin

가장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The Hero]라는 제목의 붙여진 아버지의 형상이다. 이전 전시를 통해 주목받은 바 있는 이 작품은 해병대 출신으로 30여년을 공무원으로 재직한 아버지의 나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작가는 과연 그는 영웅인가 혹은 희생양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이를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를 달성한 박정희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상으로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은 단연 레드카펫이 깔린 단상위에 2명씩 8줄로 서서 합창하고 있는 아이들인 [Voices]이다. 이는 최근 작가가 관심을 갖는 일명 ‘focus out’된 형상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서서히 초점이 흐려져 아무런 개성도 특징도 잡아낼 수 없는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획일화된 자세와 포즈로 합창하고 있다. 줄맞추어 서있는 아이들 위로는 이전 최수앙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The Wings]가 걸려있다.















멀리서 보면 천천히 날아오르는 듯 천정에 자연스레 매달린 이것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상징인 날개와 닮아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드러운 깃털대신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된 파편화된 손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 서로가 만지고 만져지며 각자를 부여잡고 있는 손들은 수많은 희생들에 의해 달성한 이상이기에 숭고하면서도 처절하다.


최수앙은 소통 불가능성을 통해 소통의 활로를 모색하는 작가이다. 앞서 밝혔듯 금기 혹은 터부시 되는 것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과잉과 결핍은 인체의 변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갈등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이 의외로 크지 않은 사이즈에 당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거대하고 기념비적인 전통적인 조각 개념에 대한 반발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지금까지 전통 조각의 주된 표현 소재가 되어왔던 절대 군주, 전쟁 영웅, 신화 속 주인공 등이 아닌 다리가 절단되어 불구가 된 말, 시대적 희생양으로 간주되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포함해 소외되고 무기력한 인물들을 좌대 위로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전통조각의 전유물인 관람객을 압도하려는 듯한 스케일도 찾아볼 수 없다. 거대한 힘에 지배당하는 무기력한 개체들을 향한 끊임없는 고민과 조형적 실험을 통해 최수앙은 무엇이 가치있는 것이며, 우리들 각자는 어디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의 질문을 되풀이한다. 나보다 더 외롭고 힘들어 보이는 인물상들을 통해, 혹여 스스로가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하거나, 사회에서 소외되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누구나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며, 충분히 소중하다’라 말하며 자존감을 갖길 바라는 희망적 에너지를 주고 싶은 지도 모른다. 완벽하리 만큼 빈틈없이 만들어진 작품들을 매 전시마다 선보이는 그에게, 작업은 평생에 걸쳐 만들어질 자신만의 장편소설의 한 단락을 채워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앞으로 작가 최수앙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글 김진섭 / 성곡미술관 큐레이터
글/사진 후출처 네이버캐스트

 



최근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최수앙님의 작품.
강렬하고, 신비롭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또한 어렵지않게 전달된다.
극사실주의 조각가는 매우 유명한 론 뮤익, 제이미 살몬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최수앙이라는 훌륭한 조각가와 그의 작품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전시에도 꼭 가서 직접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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